왜 말세시대의 선지자의 기별에 대하여 항상 유의해야 하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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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에 주신 대답은 그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며, 이 시대를 승리하기
위하여, 그리고 주님의 주신 기별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함입니다!
성경학도들은 선지자에 대하여 2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. 말세시대에도 성경시
대 처럼 선지자가 있는가? 이. 지. 화잇이 선지자인가? 하는 것입니다.
계시록 12:17절에서 이 말세시대의 ‘남은 자손’이 ‘예수의 증거’를 가졌다고 했습니다.
그런데 계 19:10절에서 ‘예수의 증거’는 ‘예언의 신’(대언의 영, for the testimony
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)이라고 했습니다,
요한이 이 말을 듣고 천사 앞에 엎드렸을 때 천사가 말하기를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
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’ 라고 했습니다. 요한이 계시록 22:9절에서도 요한이 천사
앞에 엎드렸을 때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…함께 된 종이니’라고 했습니다.
다시 말하면 ‘예수의 증거’는 ‘남은 무리’에 현존하는 예언자인데 성경시대에 있었던
‘선지자들’과 함께 한 이 시대의 예수의 증거, 곧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는 종이라는
설명입니다. 따라서 마지막시대의 선지자가 존재하고 그 선지자는 이. 지. 화잇 입니
다. 그러나 그는 자기가 ‘선지자’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. 그는 ‘큰 빛으로 인도하는
작은 빛’이라고 했습니다.
이미 ‘예언의 신’(혹은 ‘대언의 영’)에 대하여 언급한 바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
때에 ‘대언의 영’이라는 낱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된 낱말이었다고 합니다. 이 말은 당
시에도 오늘날 처럼 예언적 기능을 가리켰다는 것입니다. 성경학자들이 이 말을 사용
한 보기를 몇가지 들어보겠습니다.
‘다윗은 그의 말년에 야곱이나 모세처럼 대언의 영을 받았다.’(The Pulpit
Commentary, 삼하 23:1-7 주석)
‘하나님께서는 몇몇 여인들에게 대언의 영을 부어주시고 큰 일을 이루시게 하시기를
기뻐하셨는데 이는 주 앞에서나 신령한 사물에 있어서 남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본질
적인 우월성이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.’(Joseph Priestly, Notes on all
the Books of Scripture, Vol 2, p40, 왕하 22:14 주석)
“ ‘대언의 영’이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도 우리에게 임하시고 있다.”(
J.C. Lambert, Hasting’sDictionary of the Bible, 764)
주석학자 매튜 헨리(Mattew Henry)는 다음과 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은 성경상의
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;대언의 영’이라는 용어를 그의 주석서에 사용했습니다. 드보
라(1권 517), 한나(1권 584), 홀다(1권 853), 안나(3권 254), 시므온(3권 254),
엘리사벳(3권 247), 아가보(3권 633) 등이 있습니다.
먼저 왜 말세시대에 선지자를 주셨는가? 하는 것입니다.
‘화잇자매가 여러 책들의 원래의 저자가 아니다.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전생애
를 통하여 그에게 주셨던 바 교훈들이 담겨있다.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 종들에게
주사 세상에 전하게 하신 귀하고도 위로로 가득찬 빛이 비춰져 있다. 그 책장들로부
터 이 빛이 비치어 나와서 사람들의 심령을 비추고 그들을 구주께로 인도한다.’(문
서전도 봉사 125)고 했습니다.
그의 기별은 말세를 만난 당신의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알리시고 인도하시고
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. 이 기별은 고치시고 싸매시고 하늘 곡간으로 거두어 들이신
다는 것입니다. 이 말씀의 책장들을 넘기면서 기별을 읽는 자의 마음에 부흥과 개혁
이 불일듯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. 영적으로 각성시켜 감사와 헌신과 찬양으로
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매일의 순례생활이 기쁨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
다.
그러하다면 우리는 얼마나 간절함과 깊은 감사의 뜻을 가지고 이 말씀을 연구하
며 하나님께서 예언의 신을 통하여 하늘가는 길을 밝혀주신 것을 찬송하여야 할 것
인가! 하는 것입니다. 마지막 시대, 변화무상하며 환난과 곡절이 많은 시대, 지금은
말씀이 차고 넘치지만 기별과 방향제시가 궁한 시대를 위한 안내서를 미리부터 준
비해야 할 예언의 신의 기별연구가 깨어있는 자세로 탐구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는
것입니다.
성도들 중에 더러는 이러한 견해를 말합니다. 10만 페이지에 관한 광범위한 이. 지
화잇의 기별을 어떻게 다 읽어 소화할 수 있겠는가? 합니다. 그래서 이. 지. 화잇 저
서 출판위원회는 대쟁투 총서를 출판했습니다. 대개 시조사로 문의하면 구할 수 있
습니다. 장맛은 찍어 맛보아도 그 한독의 장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. 재림
교회 서적들이 다루고 있는 예언의 신의 말씀을 중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.
남양의 무법자요 호랑이나 다름없는 악어는 종종 시원한 야자나무 아래서 죽어 속
이 텅 빈 채로 가벼운 가죽만 앙상하게 남는다고 합니다. 왜 그러할까요? 무거운
눈을 잠시 감고 잠을 청한 동안 훈련된 불개미떼들에 의해서 부드러운 눈의 언저리
를 공격받을 때는 이미 대세는 늦은 것이라 합니다. 삽시간에 눈알이 먹히고 난 다
음 드디어 그 속 내장까지 먹혀 죽고 만다고 합니다. 어이없는 노릇입니다. 산떠미
같은 철갑 동물이 어이없게도 미미한 개미떼들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.
바벨론 불개미떼들이 예루살렘을 침범했습니다. ‘그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
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’(왕하 24:10)
‘갈대아 군사가 왕을 잡아 림나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저에게 심문하고 시드
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
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’(왕하 25:6-7) 철갑을 두른 ‘시드기야왕의 두 눈을 빼고…’!
만고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으랴!
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. 그가 눈을 뜨고 있는 한 철갑을 온 몸에 두룬 그를
어느 누가 감히 넘보거나 해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. 그러합니다. 하늘에서
분내어 내려온 사단의 활동입니다.(계 12:12 참조) 영적 깊은 잠에서 우리도 깨어
나야 한다는 것은 진실로 중요한 현대기별이라는 것입니다. 하나님께서는 그렇게
하시려고 해서 말세를 만난 교회에게 예언의 신(계 19:10 참조)을 주셨습니다.
유다의 왕들과 백성들은 전적으로 깨어 보내신 바 된 선지자의 기별에 유의할 필요
가 있었습니다.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했었습니다. 만약 그들이
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인 유다 백성은 비록 연약하다고는 할지라
도 강대국 사이에서라도 하나님의 보장의 산성이 되어 주시며 또한 불을 밝히는 불
야성이 되어 주실 것이었습니다.(신 28:1, 9-10, 13-14 참조) 그러나 선지자의 말
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. 오호. 통재라!
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음므로 불개미떼들 처럼 바벨론에게 에루살렘과 온 유
다가 삼킨 바 된 치욕과 고난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. 그러면서도 그
민족정기가 유지된 채 오랜 세월을 방황하며 마치 이전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급
여로처럼 멀고 먼 길이 되었었던 것입니다.
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유랑민도 꼭 같은 형편에 놓여있는 것입니다. 모름지기
성경말씀과 대언의 영의 기별로 무장하여 영적 바벨론 탈출을 과감히 시도해야만
한다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다시는 없다는 것입니다. 그리고 그 곧은 기별을 나팔
같이 불어 공동탈출을 시도해야만 한다(계 14:6-9, 18:4 참조)는 것입니다.
이것이 말세 성도들에게 보낸 요한계시록의 핵심기별이며 이. 지. 화잇의 해석기
별이기도 합니다. 오직 우리는 두 눈을 뜬 채 우리의 시선을 성경으로! 예언의 신
으로! 승리로! 할렐루야! 아멘! 아멘!
내 본향 가는 길(388)
내 구주 예수여 뜻대로 하소서
온 몸과 온 영혼 다 주께 드리니
이 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
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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